안즈가 누군가와 결혼했습니다만 상대는 상상에 맡기는 글입니다
리무진의 뒷좌석에 약간 늘어지게 기댄 채로, 츠카사는 멍하니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에 시선을 던졌다. 이미 도심으로부터 꽤나 멀찍이 떨어진 탓에 차창 밖에는 녹음으로 점칠된 풍경과, 이따금씩 간간히 박혀있는 단정한 주택들의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차를 타고 출발한 지 몇 시간이나 되었더라. 농후할 정도로 짙은 청록 일색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는 곰곰히 자신이 출발했던 시간을 마음 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일이 끝나자마자 도심에서 바로 운전 기사를 불러 출발했으니, 아마 근 한 시간 정도는 내내 달렸을 것이다. 이렇게나 먼 데에 사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문득 때 아닌 쓴웃음을 지었다.
안즈의 집에 초대받게 된 건 지난 주의 일이었다.
근 몇 년 간 연락이 아예 끊겨버렸던 그녀였기에, 처음에 안즈의 연락을 받았을 때엔 솔직히 기쁜 마음이 컸었다. 그녀가 이미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괜시리 알지 못할 기쁨에 벅차서 싱글벙글한 목소리로 그녀의 안부를 허겁지겁 묻곤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야 잘 지내고 있지. 라고 짤막하게 대답하던 안즈는, 가만히 뜸을 들이더니 곧 제 집에 찾아와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남편이 잠깐 해외로 출장을 가게 된 탓에 얼굴을 볼 짬이 생길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츠카사는 안즈의 전화를 받으면서 천천히 날짜를 헤아렸다. 급한 일을 모두 마치고 나면 그럭저럭 곧바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쁜 목소리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하는 츠카사의 전화기 너머로, 조금 씁쓸한 듯이 웃어 보이는 안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남편이 조금 엄한 사람이라. 내 쪽에서 찾아가지 못하는 건 미안해. 그렇지만 집에 들려주면, 우리 아이도 볼 수 있을 테고. 그럴 테니까. 으응. 안즈의 그 목소리에 싱글싱글 웃고 있던 츠카사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가지시는 건 당연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을 다부잡기는 영 어려운 일이었다. 츠카사는 한참동안이나 아무 말도 없이 창문 밖만 바라봤다. 머릿속에서 드문드문 안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 처음 그녀와 만났을 적의 모습, 졸업식날 학교를 떠나던 때의 모습, 처음으로 정장을 입었다며 어색하게 얼굴을 붉히던 모습, knights의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 무대 뒤에서 봤던 그녀의 환한 웃음, 그리고, 갑작스럽게 결혼하게 되었다며 청첩장을 내밀던 때의 모습.
모든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때마다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 파란 눈동자가 불현듯 생각나 마음에 박히듯이 찔려왔다. 누님의 아이는 누님의 그 파란 눈동자를 닮았을까. 언제나 사랑스럽게 반짝이던 그 광채를 담은 채일까. 하릴없는 생각을 하던 그가 곧 속이 빈 듯이 웃었다. 마음이 씁쓸한 게 대체 어떤 까닭에서인지 알 수 없었다. 안즈의 결혼식을 하객석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때와는 또 다른 슬픔이 느껴졌다. 슬픔에 못 견디고 울어버리는 건 결혼식 때가 끝인 줄 알았는데, 아직 한 차례 더 남아 있던 모양일까. 벌써 눈가가 괜시리 젖어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져 츠카사는 초조하게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 조금 달아오른 열기가 느껴졌다.
첫사랑의 아이를 만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차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애절한 로맨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니까. 그 애절한 이야기에서는 이럴 때 대체 어떻게 굴었더라. 아이를 만나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그 아이를 안고 있는 누님 앞에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의 피가 섞인 아이 앞에서, 나는 가식이라도 꾸며내 웃을 수 있을지. 여러 걱정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건 걱정이라기보다는 두려움일지도 몰랐다. 언제나 안즈 앞에서는 감정이 곧이곧대로 얼굴에 죄다 드러나곤 했으니까. 혹여나 제멋대로 지어서는 안 되는 표정을 지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사이에, 서서히 리무진이 교외의 좁은 도로를 타고 점점 깊숙히 마을 사이로 들어갔다. 드문드문 적은 수의 가옥들이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길의 끝에 서 있는 작지만 단정한 가옥이 눈에 들어왔다. 저 집이겠구나. 딱히 거창한 표지판도, 문패도 달려있지 않은 집이었지만 츠카사는 그 집을 보자마자 단번에 안즈의 집임을 직감했다.
오랜만에 자신을 맞이한 안즈는 여전히 변함 없는 그대로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다정하고도 상냥한 미소를 띤 모습이었다.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어. 그렇게 살갑게 말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안즈의 물빛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츠카사가, 곧 싱긋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뵙고 싶었습니다, 누님. 이라는 말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제 입술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안즈는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조금 서두른다 싶을 정도로 등을 돌려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지. 변변치는 않지만, 차라도 내올게. 소파에 앉아 있을래?
그렇게 말하며 손을 끌어 자신을 소파에 앉히는 안즈 덕에 그는 얼떨결에 소파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푹신하고 아늑한 소파에 조심스럽게 몸을 기대며, 츠카사는 차를 내오기 위해 부엌으로 향하는 안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곧 고개를 돌려 거실을 둘러보았다. 집에서는 새 집 특유의 묘한 향기가 났다. 교외에 살자고 제안한 건 역시 남편의 의사였을까. 단정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집은 말 그대로 신혼집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예쁘게 집을 꾸밀 수 있던 건 역시 누님의 솜씨 덕이겠지. 학창 시절부터 누님께서는 워낙 손재주가 뛰어난 편이셨으니까. 츠카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은 울적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놓여진 가구며, 장식품들을 눈으로 훑었다. 여전히 귀여운 걸 좋아하는 취향은 바뀌지 않은 모양인지, 군데군데 손으로 만든 귀여운 공예품 같은 것이 정성스럽게 놓여져 있었다. 커다란 창문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도외지의 오후 햇살 탓일까. 집 안은 전체적으로 아늑하고 산뜻한 분위기였다. 햇살을 맞으며 부엌 쪽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소음에 귀를 기울이던 츠카사가, 맞은 편 벽 중앙에 걸린 결혼 사진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햇살을 흠뻑 받아 뽀얗게 흐려진 결혼 사진 속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고 있는 안즈와,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 사진 속 안즈의 미소가 다른 사람과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것처럼 보여, 츠카사는 씁쓸하게 웃음을 흘렸다. 누님이 행복하신 건 분명 이 츠카사의 기쁨일 텐데, 어째서 도저히 이렇게 쓰라린 웃음밖에는 나오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에 한참동안이나 잠식되어 있는 사이, 곧 작은 쟁반에 티타임을 즐길 찻잔이며 간식을 올려두고 이 쪽으로 걸어오는 안즈의 모습이 시야에 비춰졌다.
츠카사 군, 많이 기다렸지.
이어 안즈가 조심스럽게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고풍스럽고도 귀여운 쟁반 위에는, 향기로운 차가 담겨 있는 찻잔 두 개와 과자 몇 개가 놓여진 그릇이 두어져 있었다. 눈동자를 내려 과자를 바라보던 츠카사에게, 안즈가 멋쩍은 듯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건넸다.
남편이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말이야. 급하게 전날에 장 보러 갔을 때 사왔어. 츠카사 군은 이 과자를 좋아했으니까.
그제야 츠카사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과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이 과자라면 본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 가든 테라스에서 종종 함께 티타임을 즐길 때마다 자신이 매점에서 사오곤 했던 비스킷이었다. 오늘도 매점에서 snack을 한가득 샀다고 으스대며, 포장을 뜯어 안즈 앞에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놓아주곤 했던 그 비스킷. 츠카사는 순간 벙찐 얼굴로 말없이 안즈를 바라봤다. 안즈는 자신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모양인지, 찻잔을 들어 혹여나 너무 뜨거운 온도는 아닌지 확인하고 있었다. 츠카사는 순식간에 감정이 가득 몰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 조금 숙이고 있던 몸을 애써 뒤로 뺐다. 이대로라면 끝끝내 자신이 우려하던 표정을 지어버릴 것만 같았다. 긴장으로 몸이 굳어버린 채 쭈뼛쭈뼛 찻잔의 손잡이를 잡는 자신의 이상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지, 안즈는 자그마한 손에 찻잔을 든 채 향기로운 차를 홀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실은, 텔레비전에서 몇 번 츠카사 군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어.
그렇습니까?
응.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 츠카사 군, 무대 위에선 항상 행복해 보였으니까.
…행복해 보였나요?
정말로. 반짝거리고, 화려했고, 우아해 보였어. 멋졌어.
화제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근황이 되었다. 결혼식 이후로 거의 처음 만나는 셈이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걸는지도 몰랐다. 무대 위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칭찬하는 안즈의 모습을 바라보며, 츠카사는 말없이 예전의 기억을 곱씹었다. 그녀가 아직 프로듀서였을 적에 함께 했던 수많은 무대들이 정돈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제 머릿속을 정신없이 헤집었다. 무대 뒤에서 라이브를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안즈가 자신을 향해 몰래 지어주던 미소도 흐릿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고는, 태어나서 가장 밝게 미소를 지었던 무대 위에서의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다.
내가 무대 위에서 행복할 수 있던 건 모두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츠카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무대 위와, 어두컴컴한 그림자에 싸인 무대 뒤. 그 사이에서 순간 서로 교차했던 눈빛이 생각나 그는 괜히 긴장된 숨을 내뱉어냈다. 흡사 한숨을 짓는 것처럼 보이는 츠카사를 갸웃거리며 바라보던 안즈가, 곧 미소를 짓더니 손을 뻗어 천천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의 머리 위를 부드럽게 감싸는 그리웠던 촉감에, 츠카사는 조금 커진 눈을 들어 안즈 쪽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말이야. 가끔 그 때가 그리울 때도 있어.
…….
모두의 반짝거림을 무대 뒤에서 볼 수 있었을 때, 말이야.
…….
공연이 끝나면, 이렇게 하면서 츠카사 군에게 늘 수고했어, 라고 말해주곤 했는데.
이젠 아무래도 무리지만. 그렇게 말하며 안즈는 천천히 츠카사의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었다. 방금 전까지 쓰다듬어주던 손이 제 머리 위를 떠나자 몹시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이내 갈 곳 없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자신의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물빛 눈동자와 맞닥뜨렸을 때, 그 때 무대 위에서 느꼈던 전율이 온 전신을 휘감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탓에 잠깐동안 넋을 잃고 안즈의 물빛 눈동자에 잠겨들듯 홀리고 있던 츠카사가, 곧 화들짝 놀라더니 의기소침하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시선을 돌리기는 안즈 쪽도 마찬가지였다. 안즈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슬슬 여름날의 길다란 해도 농염한 색으로 물들고 있을 참이었다. 아, 이제 슬슬 일어날 때가 됐는데.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안즈가 이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이가 일어날 때가 되었거든. 이제 슬슬 데려와야지. 밥도 먹여야 하고, 그 전에 츠카사 군에게 인사도 시켜야 하고….
아이,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츠카사의 눈빛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동요를 아는지, 모르는지. 안즈는 잠깐 실례한다고 양해를 구하며 곧 바쁜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아마 잠에서 깼을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이리라. 그런 안즈의 뒷모습을 조금은 넋나간 사람처럼 바라보며, 츠카사는 리무진을 타고 오면서 느꼈던 기이한 감정을 다시 한 번 느끼기 시작했다. 그 감정은 안즈가 문득 자신의 앞에 청첩장을 들이밀었을 때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다른 종류의 무언가였다.
이어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옹알대는 듯한 어린아이의 소리도 들려왔다. 마루 위를 걷는 실내화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렸다. 이내 복도의 모퉁이를 꺾어, 가까스로 거실에 나온 안즈는 품 속에 어린아이 하나를 안고 있는 채였다. 츠카사는 그 어린아이를 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주먹을 꼭 쥐고 있던 손이 어느샌가 풀려 다시 파르르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응. 착하지.
안즈는 능숙한 솜씨로 아이의 작은 등을 도닥이며 그렇게 타이르고 있었다. 안즈와 똑같이 갈색 머리칼을 가진 아이는 안즈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곧 뒤에서 굳은 채로 자길 멀찍이 바라보고만 있는 츠카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반들반들 빛이 나는 물색 눈동자가 그를 마주했다. 그 물색 눈동자가 공교롭게도 누군가의 것과 몹시 닮아, 츠카사는 떨리는 눈으로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멍하니 응시했다. 자고 일어난 탓에 생겼을 홍조를 잔잔히 띠고는, 츠카사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려보던 아이가 이내 함빡 웃음을 지었다. 츠카사 군이 마음에 든 모양이야. 라고, 아이를 안고 있던 안즈도 츠카사를 바라보며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아름답게도, 똑 닮은 예쁜 미소였다.
확실히 남편보다는 안즈 쪽을 훨씬 많이 닮은 듯한 그 아이는, 계속 자신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츠카사를 향해 싱글싱글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자신에게 상냥한 그 모습마저 안즈를 닮은 것 같다고, 츠카사는 부질없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분이, 마음에 들어?
안즈의 그같은 물음에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린아이 특유의 악의없는 미소가 지그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의 대답을 듣고는 잘 했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던 안즈가, 눈을 돌려 맞은편에서 제법 멍청할 정도로 자신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츠카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츠카사 군, 괜찮다면 한 번 안아볼래? 이미 어찌할 수도 없이 눈물이 핑 돌아, 눈가에 가득 어린 눈물을 어떻게 처리할 수도 없이 멍하니 눈만 깜빡거리고 있던 츠카사가, 순간 안즈의 그 말을 듣고는 현실로 돌아온 듯이 몸을 살짝 떨었다. 안즈의 권유에 그렇다, 아니다라고 말을 할 여유조차 없는 채로, 츠카사는 뭔가에 홀리듯이 천천히 그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 특유의 분유 향이 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을 참이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받들어 안았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했을 법한 나이의 아이는, 낯선 사람인 그의 품에 안겨서도 여전히 행복한 듯 헤실대며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가 한층 더 화끈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끌어안은 아이의 몸 안에서 자그마한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아직까지도 놓아주지 못한 채 사랑하고 있는 첫사랑과 눈물겹게도 닮은 이 아이는, 무슨 까닭에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눈가에서 이미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 걸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츠카사는 차마 그 눈물을 훔칠 수도 없었다.
그렁그렁거리기 시작한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조금 겁먹은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를 향해 안즈가 나지막히 속삭였다. 괜찮아, 엄마의 친구야. 반짝거리는 세월을 함께 했던 소중한 친구이자, 사랑했던 동생. 엄마가 귓전에 속삭여주는 말을 듣고 조금 안심한 모양인지 아이는 다시 밝은 미소를 띠고는 품 안에 안긴 채 츠카사의 옷자락을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매만졌다. 그 작은 손짓이, 그 작은 미소가, 그 작은 눈빛 하나가 모두 사랑하는 상대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제멋대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츠카사는 아이를 안은 팔에 조금 힘을 주었다. 악의 없는 물빛 눈동자가 싱그럽게 휘어지며 자신을 바라봤다. 마마, 마마. 곧이어 그렇게 옹알대며 작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팍을 콕콕 찌르는 아이를 미소띤 채 바라보고 있던 안즈가, 츠카사를 향해 말을 걸었다.
츠카사 군이 누구인지 궁금한가봐. 이 아이, 늘상 그럴 때마다 이런 행동을 하거든.
이름을 말해줄 수 있어? 안즈의 그 말에, 츠카사는 다시 한 번 아이의 파란 눈동자를 응시했다. 아이의 눈동자도 마치 그렇게 묻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츠카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읊조렸다. 떨린다기보다는 울고 있는 목소리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는지도 모르겠다.
제 이름은, 스오우, 츠카사… 입니다.
가까스로 울음을 내뱉지 않은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듬거리며 제 이름을 내뱉었다. 아이는 울음이 반쯤 섞인 목소리를 알아듣기나 한 걸까. 웃음기가 조금 가신, 나름은 진지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대는 아이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들은 낯선 이름을 잠깐 곱씹고 있던 모양인지 한참이나 말이 없던 아이가, 곧 입을 벌려 조금씩 오물오물 옹알대기 시작했다.
우응, 슈, 오우, 츄… 카샤….
아이는 아직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 탓에 아이의 작은 혀 끝에서 빚어진 그의 이름은 쉽사리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뭉개진 채였다. 그렇지만.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꾸역꾸역 참고 있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천사같은 얼굴을 한 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아이의 모습에게서, 자신을 처음 만났던 날의 안즈의 모습이 흐릿하게 겹쳐졌다. 자신의 이름을 말했을 때, 그 때의 안즈도 저렇게 진지한 표정을 한 채 자신의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하듯이 되뇌였었더라지. 누님과 이 아이는 어째서 이렇게나 눈물나도록 닮았는지. 이렇게나 누님을 닮은 아이가, 나의 아이이기도 했다면 정말로 좋았을 텐데. 한없이 헛된 생각을 하며 츠카사는 천천히 미소를 흘렸다. 그렇습니다. 제 이름은 스오우 츠카사입니다. 그렇게 도닥이며 조금은 서툰 손길로 부둥켜 안는 그가 퍽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아이는 품에 폭 안긴 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미 잔뜩 눈물범벅이 되어버린 얼굴로 미소를 지은 채 아이를 마주보다, 곧 자신의 곁에 서있는 안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안즈 역시 평소와는 어딘가 다른 듯한 미소를 지은 채 츠카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을 나섰을 때는 벌써 어둑한 저녁이었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때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안즈를 뒤로 한 채, 츠카사는 미리 근처에 대기시켜 두었던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아이를 안았던 품에서는 아직까지 아이의 분유 냄새며 베이비파우더 향이 아스라이 풍겨 나오는 것 같았다. 이제는 완전히 어둑해진 차창 너머의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츠카사는 안즈의 파란 눈동자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흡사 여름날의 높다란 하늘과도 같던 그 잔잔한 물색 눈동자를. 그리고 그녀의 물빛 눈동자를 빼다 박은 듯했던 아이의 순진무결한 그 눈동자를. 츠카사는 진이 빠진 듯한 느낌으로 한숨을 쉬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어딘가 애처로운 듯한 느낌의 숨소리가 들렸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이따금씩 사랑하는 누님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상상을 종종 하곤 했다. 교외에 있는 포근하고 안락한 집에 신혼 살림을 마련하고, 누님과 단란하게 가정을 이루어 사는 그런 상상. 언젠가는 누님과 자신을 빼다 박은 아이도 낳아,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행복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을 상상하곤 했다. 아이돌로서 성공하는 것보다, 명문가의 가독을 훌륭하게 계승해 가문에 길이 남을 당주가 되는 것보다, 그것이 자신에겐 훨씬 더 소중하고도 이루고 싶었던 꿈이었다. 끝내 이루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안즈는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 옆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늘상 그래왔던 것처럼 사랑을 담뿍 받으며 눈부시게도 행복한 삶을 만끽하겠지. 그 때묻지 않은 행복을 순전히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망가뜨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미련이 제 마음의 기저에 가라앉아있다는 사실만큼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아직도 간간히 그런 헛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누님의 그런 눈부신 행복 속에, 스오우 츠카사라는 존재가 있을 수는 없었던 걸까. 누님의 옆에 지금 서 있는 그 사람보다 훨씬 더 빨리 선수를 쳤더라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나일 수도 있었던 걸까. 누님을 닮은 그 사랑스러운 아이가, 나의 아이일 수도 있었던 걸까. 행복할 수 있었던 걸까. 누님과 내가, 같은 행복을 꿈꿀 수 있었던 걸까……
츠카사는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 몸을 느슨하게 기댔다.
차는 아직 교외지의 한 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